지금까지의 히스토리

일상 | 2020.10.11 14:47

2000년 즈음 imf와 카드대란을 거치며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은 격동의 시기를 겪게 되었고 김대중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과 IT버블 등의 사회분위기는 분명 앨빈토플러가 얘기한 세번째 물결에 해당하는 움직임이었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단순히 html 기반의 1차적 페이지 전시에서 벗어나 서버에서 동적인 페이지를 양산하였고 세계적으로보면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전자상거래 기업의 등장으로 인터넷은 살아가기 위한 필수 기술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당시의 정보 흐름은 서버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사용자가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직적인 관계였고 커뮤니티는 end-level에서의 소규모 정보교환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1인미디어로 대표되는 블로그와 위키라 불리는 집단지성 시스템으로 end-level에서의 양상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나는 2004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글을 올렸다.
당시 한국은 싸이월드가 주류였는데 싸이월드의 폐쇄성, (도토리로 대표되는)상업성, 네이트온 연동으로 사용자를 흡수하다시피한 독점성으로 그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 부류의 사람들중에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 대표적인 매체가 네이버 블로그였다.

어느순간부터 개인 도메인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국 밴드 Queen을 좋아했는데 Freddie Mercury 생전 마지막 앨범인 innuendo 에 착안해 innu.pe.kr 도메인을 구입했었고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innuendo
빗대어 하는 말, 빈정거림

2007년즈음에 리눅스 서버와 APM 기반의 개인 웹페이지를 직접 운영했다.
당시엔 가상서버호스팅 개념이 없어 중고서버(HP의 DL360으로 기억한다)를 30만원에 구매해 분당의 한 IDC에 입주시켰고 매달 60,000원(부가세 별도)의 요금을 지불했었다.
돈도 넉넉하지 않았고 차가 없어 이동에도 제한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짓이었다. 서버 공부를 위해 몇개월 운영하다 철수하고 집에서 서버를 돌렸던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10여년전만 하더라도 개인서버를 만들고 세팅하고 운영하는게 쉬운일은 아니었다.

이후 비용의 문제로 웹호스팅에서 운영하다 클라우드나 가상서버호스팅이 일반적인 서비스가 됨에따라 자연스레 갈아타게 되고 서버운영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해졌다.
이후 태터툴즈, textcube, wordpress 등을 거치며 작년까지 사이트를 유지해 왔었다.

 

대략 이런 형태의 웹사이트 들이었고 어느정도의 트래픽도 유지되었다.

 

그러다 작년부터 서버유지에 소홀해졌는데 그동안의 시간과 비용 대비 이득에 대한 손익계산 결과 급격한 현타가 왔으니 그 동안의 모든 게시글과 서버운영을 모두 중단했다. 

올초 코로나19로 급격한 사회적 변화가 발생하고 지인과 주식, 광고, 소일거리에 대한 얘기를 하던 와중 당시 나의 관심분야였던 패시브인컴(passive income)에 대한 서적을 접하고 개인 웹페이지를 다시 열기로 마음먹고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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